내용 바로 가기

차례 바로 가기

꼭 성서의 표준에 따라 살아야 하나?

꼭 성서의 표준에 따라 살아야 하나?

청소년은 묻는다 ···

꼭 성서의 표준에 따라 살아야 하나?

학교 식당에서 친구 둘하고 점심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친구 하나가 처음 보는 어떤 남학생에게 눈길이 쏠려 있습니다.

한 친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있잖아, 쟤 정말 너 좋아하나 봐. 아까부터 너만 뚫어지게 쳐다보더라. 아주 너한테서 눈을 떼질 못한다니까!”

다른 한 친구가 귀에다 대고 이렇게 속삭입니다. “근데 말야 아직 여자 친구가 없대!”

그러자 먼저 말을 꺼냈던 친구가 이렇게 말을 잇습니다. “아쉽네, 난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이라서. 아니면 당장 가서 어떻게 해 볼 텐데!”

그러더니 정말 듣기 싫은 말을 합니다.

“그런데 넌 왜 여태까지 남자 친구가 없냐?”

그 말이 나올 줄 알고 있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남자 친구를 사귀고 싶지만 결혼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는 말을 누누이 들어서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항상 마음 한구석에 걸리는 것이 ···.

“종교 때문이지, 맞지?” 다른 친구가 말합니다.

그 순간 ‘내가 무슨 생각 하는지 어떻게 알았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넌 맨날 성경 책밖에 모르냐? 가끔 놀기도 하고 좀 그래라” 하고 아까 그 친구가 핀잔을 줍니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성서의 표준에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놀림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 그때 어떻게 했습니까?

자신 있게 나의 도덕적 신념을 밝혔다

당황스러웠지만 최선을 다해 나의 믿음에 대해 설명했다

학교 친구들 말대로 내가 재미없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꼭 성서의 표준대로 살아야 하나?’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한때 그런 생각을 했던 데버러라는 청소년은 이렇게 말합니다. * “친구들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더라고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고요. 그런데 성서의 표준을 따르려면 못하는 게 너무 많은 거 같았어요. 자유롭게 살아가는 학교 친구들이 정말 부러웠죠.”

의문을 갖는 것은 잘못인가?

성서 필자 아삽도 한동안 꼭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내가 악한 사람들의 평안함을 보고는 자랑하는 자들을 부러워하게 되었다.” 심지어 이런 말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정녕 헛되도다, 내가 내 마음을 깨끗이 한 것도, 내 손을 결백함으로 씻는 것도.”—시 73:3, 13.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꼭 여호와 하느님의 표준에 따라 살아야 하는지 의문을 갖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하느님도 충분히 이해하신다는 것입니다. 아삽의 생각이 성서에 기록되게 하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아삽은 그분의 법에 따라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의 방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시 73:28) 그는 어떻게 그러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까? 아삽은 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직접 고통을 겪어 보고 나서야 그러한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통해 배웠습니다. (시 73:16-19) 여러분도 그렇게 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현실은 어떠한가?

아삽과는 달리 다윗 왕은 뼈저린 경험을 하고 나서야 하느님의 표준을 무시하면 고통을 겪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윗은 신하의 아내와 간음을 범한 다음 그 사실을 숨기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로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자신도 극심한 염려에 시달렸습니다. (사무엘 둘째 11:1–12:23) 다윗이 회개한 후에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영감을 주셔서 그가 자신의 감정을 담은 노래를 짓게 하셨고 그 노래가 우리의 유익을 위해 성서에 보존되게 하셨습니다. (시 51:1-19; 로마 15:4)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통해 배우는 것은 성경의 취지와도 일치하는 지혜로운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아삽을 본받고 다윗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몇몇 나라에 사는 여러 청소년들의 말을 들어 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한동안 성서의 표준을 무시하며 살았는데, 특히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 관계를 갖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처럼 회개했고 지금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다시 깨끗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사야 1:18; 55:7) 그들의 말을 들어 보겠습니다.

「깨어라!」: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준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데버러: “학교에 가면 다들 이성 친구와 함께 다니는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어요. 그런 애들하고 어울리면서 그 애들이 서로 끌어안고 키스하는 것을 보면 괜히 부럽기도 하고 외로운 느낌도 들었지요. 종종 내가 좋아하던 어떤 남자 애에 대해 이 생각 저 생각 하면서 여러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그 애와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고 그럴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마음까지 들었어요.”

마이크: “성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책과 텔레비전 프로를 봤어요. 친구들과 성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호기심이 강해지더라고요. 그러다가 어떤 여자 애하고 단둘이 있게 되었는데, 서로 신체 접촉을 즐기면서도 성 관계만은 갖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고 과신했던 거죠.”

앤드루: “인터넷에서 음란물을 자주 봤어요. 술도 많이 마시기 시작했고요. 또 성서의 도덕 표준을 따르지 않는 애들하고 파티에도 종종 갔지요.”

트레이시: “열여섯 살 때에는 온통 남자 친구 생각뿐이었어요. 결혼하기 전에 성 관계를 갖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게 그렇게 나빠 보이진 않더라고요. 결혼 전에 성 관계를 가질 생각은 없었지만 감정이 이성을 압도해 버렸어요. 한동안은 양심의 가책도 느껴지지 않았지요.”

「깨어라!」: 하고 싶은 대로 해서 행복했습니까?

데버러: “처음에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어요. 마침내 친구들하고 하나가 된 것 같아 정말 행복했지요. 하지만 그런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언제부터인가 순수성을 잃었다는 생각에 자신이 더럽고 추하게 느껴지고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듯 허전했어요. 결코 되돌려 받을 수 없는 순결을 너무 쉽게 내던져 버린 것 같아 정말 후회스러웠지요. 그 후로 종종 ‘도대체 내가 뭔데 그러고도 아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라는 질문을 던져 보곤 해요. 또 ‘내가 여호와의 사랑 넘친 표준을 무시한 거지?’라는 질문을 해 보기도 해요.”

마이크: “비참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어요. 내 행동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어떤 영향을 받든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 봤지만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나 하나 즐겁자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 밤잠을 설치게 되었지요. 결국 성적 쾌락도 사그라들고 남은 건 고통과 수치심밖에 없었어요.”

앤드루: “나쁜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점점 더 쉬워졌어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책감과 나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마음이 괴로웠지요.”

트레이시: “얼마 안 가서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현실에 눈을 뜬 거죠. 성적 쾌락에 빠져 청소년기를 망치고 말았어요. 남자 친구와 함께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결국 서로에게 고통과 불행을 안겨 주고 마음에 상처만 남긴 채 헤어지고 말았지요. 밤마다,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걸 후회하며 침대에서 흐느껴 울었어요.”

「깨어라!」: 성서의 도덕 표준이 자유를 제한한다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습니까?

데버러: “성서의 표준을 어긴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건 아니에요. 여호와의 조언을 따를 때 그분이 어떻게 느끼실지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그분의 교훈을 무시할 때 어떤 결과가 오게 될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요. 그냥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그걸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기억해야 해요. 우리의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니까요. 그리고 하느님의 조언을 무시하면 자신도 고통을 겪게 되죠.”

마이크: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친구들이 멋지게 살아가는 것 같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볼 줄 알아야 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소중한 것들 중에는 존엄성과 순결도 포함됩니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 그러한 선물을 내던지는 것은 자신을 싼값에 팔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죠. 부모님이나 다른 존경하는 분들과 이 문제에 대해 상의해 보세요. 실수를 하게 되면 얼른 솔직히 털어놓고 상황을 바로잡아야 하고요. 여호와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정말 마음이 평온해지는 걸 느끼게 될 겁니다.”

앤드루: “경험이 없을 때는 친구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재밌어 보일 거예요. 그런 친구들이 나타내는 태도에 영향도 받게 되고요. 그래서 친구를 지혜롭게 선택해야 되죠. 여호와를 신뢰하면 후회할 일을 하지 않게 될 거예요.”

트레이시: “‘나는 괜찮을 거야’라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돼요. 우리 어머니는 나를 앉혀 놓더니 계속 그렇게 살다가는 가슴 아픈 일을 겪게 될 거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해 주셨어요. 그런 말을 들으니까 정말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내가 그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내가 틀렸어요. 여호와의 표준에 따라 사세요.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어울리세요. 그러면 더 행복해질 거예요.”

성서의 표준—족쇄인가, 안전벨트인가?

성서의 표준에 따라 살려고 하는 것을 친구들이 조롱한다면 이러한 점들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친구들이 성서의 도덕규범에 따라 사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친구들은 성서를 직접 읽으면서, 하느님의 법을 지킬 때 누리게 되는 유익을 조사해 보았는가? 또한 그러한 표준을 무시할 때 어떤 결과가 있게 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는가? 아니면 단순히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것일 뿐인가?’

아마 아는 사람들 중에 “무리의 뒤를 따라”가듯이 군중 심리에 이끌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탈출 23:2) 그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느님의 선하고 받아들이실 만하고 완전한 뜻이 무엇인지 확인”하라는 성서의 조언을 따라야 합니다. (로마 12:2) 여호와는 “행복하신 하느님”이며 우리도 행복해지기를 원하십니다. (디모데 첫째 1:11; 전도 11:9)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그분의 표준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물론 그분의 표준이 자유를 제한하는 족쇄와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서의 도덕규범은 차에 탄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안전벨트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는 확실히 성서를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표준에 따라 살아가기로 결정한다면, 여호와께서 기뻐하실 것이며 우리 역시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이사야 48:17.

웹사이트 www.watchtower.org/ypko에 접속하면 “청소년은 묻는다 ···” 연재 기사를 더 많이 읽어 볼 수 있습니다.

[각주]

^ 17항 이 기사에 나오는 이름들은 가명임.

생각해 볼 점

▪ 무엇 때문에 성서의 표준에 따라 살기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까?

▪ 하느님의 표준에 따라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