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개종한 후에 하느님의 왕국에 대한 좋은 소식을 열심히 전했습니다. 그러자 한때 반대자였던 바울 자신도 자주 격렬한 반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사도 바울은 몇 차례 전파 여행을 하면서,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원래 목적을 이룰 왕국에 대한 좋은 소식을 곳곳에 널리 전했습니다.
바울은 첫 번째 전파 여행을 하던 중에 리스트라에서 날 때부터 불구인 한 남자를 고쳐 주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바울과 그의 여행 동료인 바나바가 신이라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두 사람은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희생을 바치려 하는 것을 간신히 말렸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에 바로 그 사람들이 바울의 적들에게 영향을 받아 바울을 돌로 쳤으며 그가 죽은 줄 알고 버려두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공격을 당하고도 살아남았으며, 후에 그 도시에 돌아가 격려적인 말로 제자들의 힘을 북돋워 주었습니다.
일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이 아닌 신자들이 모세 율법의 몇몇 규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울은 그 문제를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연로자들에게 가져갔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주의 깊이 검토한 후에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에 따라 회중들에 편지를 보내어, 우상 숭배와 피를 먹는 일과 피를 빼지 않은 고기와 음행을 멀리하라고 권고하였습니다. 그러한 명령들은 “필요한 것들”이었지만, 그러한 명령을 따르기 위해 모세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사도 15:28, 29.
바울은 두 번째 전파 여행 중에 현대의 그리스에 위치한 베레아에 갔습니다. 그곳에 사는 유대인들은 말씀을 열렬히 받아들였고, 바울의 가르침을 확인하기 위해 매일 성경을 조사했습니다. 또다시 반대가 일자 그는 어쩔 수 없이 그곳을 떠나 이번에는 아테네로 갔습니다. 바울은 학식 있는 아테네의 청중 앞에서 힘 있는 연설을 했습니다. 그 연설은 재치와 분별력과 설득력의 모범으로 남아 있습니다.
바울은 세 번째 전파 여행을 한 후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에 들렀을 때, 일부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 들며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개입하였고 바울을 조사했습니다. 로마 시민이었던 바울은 후에 로마 총독 펠릭스 앞에서 변론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여러 죄목을 들어 바울을 고발했지만 증거는 전혀 제시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또 다른 로마 총독 페스투스가 자신을 유대인에게 넘기지 못하게 하기 위해 “나는 카이사르에게 상소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페스투스는 ‘당신은 카이사르에게 갈 것이오’ 하고 대답했습니다.—사도 25:11, 12.
그 후에 바울은 재판을 받으러 배편으로 이탈리아로 호송되었습니다. 항해 도중 배가 난파되어 그는 몰타 섬에서 겨울을 나야만 했습니다. 마침내 로마에 도착한 그는 셋집에서 2년을 머물렀습니다. 사도 바울은 군인의 감시를 받기는 했지만, 그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왕국에 대해 열정적으로 계속 전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