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2:1-30

2  그러므로 여러분 가운데 그리스도 안의 격려나 사랑의 위로나 영적인 친교나 부드러운 애정과 동정심이 있다면,+ 2  같은 정신과 같은 사랑을 가지고 온전히 연합하여 하나의 생각을 가짐으로+ 내가 기쁨으로 충만해지게 해 주십시오. 3  아무 일도 다툼이나+ 자기중심적으로 하지 말고,+ 오히려 겸손하게 남을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여기십시오.+ 4  여러분 자신의 일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일에도 관심을 가지십시오.+ 5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던 이러한 정신 태도를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6  그분은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고 계셨지만,+ 하느님과 동등하게 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셨습니다.+ 7  오히려 자신을 비우고 종의 모습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습니다.+ 8  그뿐 아니라, 사람으로 오셨을 때에 자신을 낮추어 죽기까지, 아니, 형주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이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탁월한 위치로 높이시고+ 친절하시게도 그분에게 다른 모든 이름보다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예수의 이름 앞에 모든 무릎 곧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의 모든 무릎을 꿇게 하시고,+ 11  모든 혀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공개적으로 인정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12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항상 순종해 왔습니다. 내가 함께 있을 때만이 아니라 지금처럼 떨어져 있을 때에도 더욱더 기꺼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움과 떨림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계속 이루어 나가십시오. 13  하느님은 자신이 기뻐하시는 바를 위해 여러분에게 힘을 주시고, 여러분에게 의욕과 그것을 행할 능력을 주시는 분입니다.+ 14  무슨 일이든 투덜거리거나+ 논쟁하지 말고+ 하십시오. 15  그리하여 나무랄 데 없고 순결하게 되어,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세대 가운데서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십시오.+ 이 세상에서 여러분은 빛을 비추는 사람들로서 빛나고 있습니다.+ 16  생명의 말씀을 계속 굳게 잡으십시오.+ 그러면 내가 달린 것이 헛되지 않았고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내가 그리스도의 날에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17  하지만 여러분이 믿음으로 바친 희생과+ 거룩한 봉사 위에 내가 음료 제물처럼 부어지고+ 있다 해도, 나는 즐거워하며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합니다. 18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즐거워하고 나와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19  주 예수 안에서 나는 디모데를+ 여러분에게 속히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내가 여러분에 관한 소식을 듣고 격려를 받으려는 것입니다. 20  내게는 그 사람과 같은 성향을 가지고 여러분의 일을 진실하게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21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 일에만 관심을 가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22  그러나 여러분은 디모데가 자기에 대해 제시한 증거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녀가+ 아버지와 함께하듯이 좋은 소식의 진전을 위해 나와 함께 섬겼습니다.* 23  그러므로 내 상황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알게 되는 대로 그를 보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4  그리고 나 자신도 곧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합니다.+ 25  나는 지금 여러분에게 에바브로디도를 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나의 형제이자 동료 일꾼이자 동료 군인이며, 또 여러분이 보낸 사절이자 나의 필요를 돌보아 주는 수종입니다.+ 26  그가 여러분 모두를 간절히 보고 싶어 하며, 자기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여러분이 들은 것을 알고 우울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7  사실, 그는 병들어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에게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베푸셔서 내가 또 다른 슬픔을 겪지 않게 하셨습니다. 28  그래서 나는 아주 급히 그를 보냅니다. 여러분도 그를 보고 다시 기뻐하고 나도 근심을 덜기 위해서입니다. 29  그러므로 크게 기뻐하면서 주 안에서 그를 관례대로 환영하십시오. 그리고 그와 같은 사람들을 계속 소중히 여기십시오.+ 30  여러분이 여기에서 나에게 해 주지 못하는 봉사를 그가 대신하려고 하다가+ 자기 목숨을 위험에 처하게 했으며 그리스도의 일로 인해 죽을 뻔했기 때문입니다.

각주

직역하면 “사람의 모양”.
또는 “종으로 섬겼습니다.”

연구 노트

격려 … 위로: 여기서 바울은 의미가 비슷한 그리스어 명사 2개를 사용한다. “격려”로 번역된 그리스어(파라클레시스)는 의미 폭이 넓다. 이 단어는 이 구절과 다른 구절들(행 13:15; 히 6:18)에서처럼 “격려”로 번역될 수도 있고, “권고”(살전 2:3; 딤전 4:13; 히 12:5)나 “위로”(롬 15:4; 고후 1:3, 4; 살후 2:16)로 번역될 수도 있다. (롬 12:8 연구 노트 참조) “위로”로 번역된 그리스어(파라미티온)는 “위로하다; 기운을 북돋다” 또는 “긍정적이고 친절한 방식으로 말하다”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동사에서 나온 말이다. (고전 14:3 연구 노트 비교) 바울의 말에는 빌립보 사람들이 서로 격려하고 위로한다면 회중의 연합이 강화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빌 2:2.

영적인 친교: 직역하면 “영을 함께 나누는 일”. 이 표현은 서로 관심을 갖고 함께 나누는 친밀한 관계를 가리킨다. (“나누는 일; 친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에 관해 설명하는 행 2:42 연구 노트 참조) 이 구절과 이어지는 구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목표를 함께 추구하고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 아래 서로 협력하여 일하면 세상이 깨뜨릴 수 없는 연합을 이루게 된다고 말한 것이다. (빌 2:2 연구 노트 참조) 한 성경 사전에서는 이 구절에 사용된 그리스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그처럼 함께 나누려면 다른 사람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후 13:14. 요 17:21 연구 노트 참조.

부드러운 애정: 이 문맥에서 그리스어 스플랑크논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강렬한 감정을 가리킨다.—고후 6:12 연구 노트 참조.

온전히 연합하여: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신프시코스)는 (함께)과 프시케(“영혼”으로 번역되기도 함)가 결합된 말로, “영혼이 연합되고(함께 결합되고)”로 번역할 수도 있다. 바울은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이 연합을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문맥에서 이 표현을 비롯한 여러 가지 표현을 사용한다.—빌 2:1 연구 노트 참조.

자기중심적으로: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을 가리킨다.—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그리스어가 사용된 갈 5:26 연구 노트 참조.

겸손하게: 또는 “자기를 낮추는 정신으로”.—행 20:19 연구 노트 참조.

남을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여기십시오: 또는 “남을 자기보다 더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십시오”.—또한 롬 12:3; 고전 10:24; 빌 2:4 참조.

이러한 정신 태도를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또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여러분 안에 가지십시오”. 문맥을 보면 예수께서 가지셨던 “이러한 정신 태도”가 겸손한 태도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빌 2:3, 4.

그분은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고 계셨지만: “모습”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모르페)는 기본적으로 “본성; 겉모습; 모양; 닮은 것”을 가리킨다. “하느님이 영이신” 것처럼 예수께서도 영적 존재이셨다. (요 4:24연구 노트) 예수께서 “종의 모습”을 취하여 “육체가 되신” 즉 사람이 되신 것을 가리키는 데도 동일한 그리스어가 사용되었다.—빌 2:7; 요 1:14.

하느님과 동등하게 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셨습니다: 또는 “하느님과 동등하게 되는 것을 장악해야(취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예수께서 나타내신 것과 같은 훌륭한 태도를 길러 나가도록 격려한다. 빌 2:3에서 바울은 그들에게 “남을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여기라”고 말한다. 5절에서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던 이러한 정신 태도를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하느님을 더 나은 분으로 여기신 예수께서는 결코 “하느님과 동등하게 되려고”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분은 “자신을 낮추어 죽기까지 … 순종하셨다.” (빌 2:8; 요 5:30; 14:28; 고전 15:24-28) 마귀는 예수와 전혀 다른 태도를 나타냈다. 마귀는 하와에게 하느님처럼 되라고, 즉 그분과 동등하게 되라고 부추겼다. (창 3:5) 바울이 여기서 강조한 요점, 다시 말해 겸손과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느님에 대한 순종의 중요성을 예수께서는 완벽하게 모범으로 보여 주셨다.—이 구절에 나오는 ~하게 되려는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하게 되려는: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명사 하르파그모스(직역하면 “장악해야 할 것”)는 기본적으로 “장악하다; 채어 가다”를 의미하는 동사 하르파조에서 나온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 단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계속 보유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성경에서 이 단어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계속 보유한다는 의미로 결코 쓰이지 않는다. 이 단어는 “차지하다”나 “빼앗다”, “채어 가다”와 같은 표현들로 자주 번역된다. (마 11:12; 12:29; 13:19; 요 6:15; 10:12, 28, 29; 행 8:39; 23:10; 고후 12:2, 4; 살전 4:17; 유 23; 계 12:5) 예수께서 “하느님과 동등하게 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셨다”는 표현을 볼 때 그분이 하느님과 동등한 적이 결코 없었음이 분명하다.

자신을 비우고: “비우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문자적으로 어떤 것의 내용물을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바울은 그 단어를 예수와 관련된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예수께서는 땅에서 사람으로 살면서 고통을 당하기 위해 영적 존재로서의 삶을 포기하셨다. 천사들이 사람들 앞에 나타나기 위해 육의 몸을 입은 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천사들과는 달리 예수께서는 영의 몸과, 영적 존재로서 누리던 영광과 특권을 완전히 포기하셨다. 이제껏 그 어떤 인간이 치른 희생도 예수께서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포기하신 것에 비할 수 없다.

사람으로 오셨을 때에: 직역하면 “사람의 모습으로 계셨을 때에”.—빌 2:6 연구 노트 참조.

형주: 또는 “고통의 기둥”. 예수께서는 범죄를 저지르고 신성을 모독했다는 누명을 쓴 채 기꺼이 ‘형주에서 죽임을’ 당하심으로 겸손과 순종에 대한 가장 강력한 교훈을 남기셨다. (마 26:63-66; 눅 23:33. 용어 설명 “기둥(2)”; “형주” 참조) 그분은 인간이 극도로 시험을 받을 때에도 여호와께 충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문의 여지 없이 증명하셨다.—요 5:30; 10:17; 히 12:2.

친절하시게도 … 주셨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 카리조마이는 그리스어 카리스와 어근이 같은데, 카리스는 “과분한 친절”로 자주 번역되지만 “하느님의 은혜”로 번역되기도 한다. (요 1:14연구 노트) 이 문맥에서 이 단어는 하느님께서 사랑 넘친 관대함과 은혜로 예수에게 높여진 이름, 즉 “다른 모든 이름보다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는 사상을 전달한다. 하느님께서 자신의 아들에게 그러한 이름을 주실 수 있는 것을 볼 때, 아버지이신 하느님은 예수보다 더 크신 분이며 예수께서는 아버지보다 낮은 위치에 계신 분임이 분명하다. (요 14:28; 고전 11:3) 따라서 이처럼 높여진 지위로 인해 예수께 돌아가는 모든 영예는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이 된다.—빌 2:11.

다른 모든 이름: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를 직역하면 “모든 이름”(「왕국 행간역」[Kingdom Interlinear])이 된다. 실제로 많은 번역판에서는 그런 번역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럴 경우 예수의 이름이 하느님의 이름보다 더 뛰어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표현은 문맥에 조화되지 않는다. 바울이 이 구절에서 “하느님께서는 그분[예수]을 탁월한 위치로 높이시고 친절하시게도 그분에게 … 이름을 주셨습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일부 문맥에서 “다른 모든”이라는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한 예로 눅 13:2(“다른 모든”); 눅 21:29(“다른 모든”); 빌 2:21(“다른 사람들은 모두”)을 들 수 있다. 따라서 문맥과 이 그리스어가 다른 구절들에서 사용된 방식을 볼 때 이 표현을 “다른 모든”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바울은 예수의 이름이 그분에게 그 이름을 주신 분인 여호와의 이름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이름보다 뛰어나다는 점을 설명한 것이다.—또한 고전 15:28 참조.

이름: 성경에서 “이름”이라는 표현은 단지 다른 대상과 구별시켜 주는 말일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 24:9 연구 노트 참조) 여기서 하느님께서 예수에게 주신 “이름”은 예수께서 아버지에게서 받은 권위와 지위를 상징한다. 빌립보서 2장의 내용을 볼 때 예수께서는 부활되신 후에 그처럼 높여진 이름을 받으셨다.—마 28:18; 빌 2:8, 10, 11; 히 1:3, 4.

예수의 이름 앞에 … 모든 무릎을 꿇게 하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지성 있는 피조물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예수의 지위를 인정하고 그분의 권위에 복종한다는 의미이다.—마 28:19 연구 노트 참조.

땅 아래 있는 자들: 죽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죽은 사람들이 “기념 무덤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요 5:28, 29) 무덤에서 부활되면 그들 역시 그리스도의 권위에 복종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공개적으로 인정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빌 2:11.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롬 10:9 연구 노트 참조.

‘주’: 롬 10:9 연구 노트 참조. 일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라는 표현이 예수와 그분의 아버지 여호와가 동일한 인격체라는 의미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맥을 볼 때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하느님께서 그분을 탁월한 위치로 높이시고 친절하시게도 그분에게 다른 모든 이름보다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고 알려 주기 때문이다.—빌 2:9. 롬 10:9 연구 노트 참조.

공개적으로 인정하여: 또는 “공개적으로 전하여; 고백하여”. 문맥을 보면 그렇게 인정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시키셨다고 확신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롬 10:9 연구 노트 비교.

함께 있을 때 … 떨어져 있을 때: 바울은 자신이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있는 기간을 가리켜 그리스어 파루시아를 사용한다. 바울이 이 그리스어를 아푸시아 즉 “떨어져 있을 때”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한 것을 보면 이 단어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이 단어는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임재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예수의 임재는 현 세상 제도의 마지막 날이 시작될 때 그분이 하늘에서 메시아 왕으로 즉위하시면서 시작되었다.—마 24:3; 고전 15:23; 빌 1:26 연구 노트 참조.

계속 이루어 나가십시오: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기본적으로 “성취하다; 달성하다”를 의미한다. 이 구절에서 이 동사는 계속적인 행동을 의미하는 형태로 되어 있어서, 어떤 일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여러분에게 힘을 주시고: 또는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계시고”. 그리스어 에네르게오는 이 구절에 2번 나오는데, “힘을 주시고”와 “행할 능력을 주시는”으로 번역되었다. 하느님의 성령 즉 활동력은 우주에서 우리에게 능력 즉 힘을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근원이다.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사용하여 만물을 창조하셨다. (창 1:2; 시 104:30; 사 40:26)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종들이 힘이 빠질 때 성령을 사용해 필요한 힘 즉 “행할 능력”을 주신다. (사 40:31) 또한 여호와의 영은 필요에 따라 어떤 사람이 이미 가지고 있는 능력을 향상시켜 줄 수 있다. (눅 11:13; 고후 4:7) 사도 바울은 자신이 열심히 노력할 때 하느님께서 지원해 주시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빌 4:13; 골 1:29.

의욕 … 을 주시는: 과거에 살았던 하느님의 종들 중 일부는 낙담이나 개인적인 약점 같은 것들 때문에 하느님을 섬기려는 의욕을 잃었다. 심지어 더는 살고 싶지 않다고 느끼기까지 했다. (왕상 19:4; 시 73:13, 14; 욘 4:2, 3) 여기서 바울은 그처럼 의욕이 없을 때 하느님께서 기꺼이 의욕을 주신다고 말한다. 그분은 특히 그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그렇게 하신다.—시 51:10, 11; 73:17, 18.

투덜거리거나: 투덜거리는 것은 불평하거나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대개 공개적으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계속 투덜거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동조를 얻으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이나 입장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겨 하느님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의를 이끌 수 있다. 그러한 행동은 동료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불화를 일으켜, 연합하여 여호와를 섬기려는 그들의 노력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 기원 55년경에 바울은 고린도 회중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투덜거려 여호와를 노엽게 했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고전 10:10 연구 노트 참조) 하지만 모든 불평이 다 하느님을 불쾌하시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 구절에 사용된 그리스어가 행 6:1에도 나오는데, 그 구절에서는 예루살렘의 그리스어를 하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과부들이 물질적으로 소홀히 여겨졌기 때문에 “불평하기 시작했다”고 알려 준다. 그로 인해 사도들이 그러한 상황을 바로잡게 되었다.—행 6:1-6.

거룩한 봉사: 또는 “공적 봉사”. 바울은 이 단어를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를 가리키는 데 사용한다. 그는 빌립보의 동료 숭배자들을 위해 사랑으로 부지런히 봉사했으며, 그것은 그들에게 참으로 유익이 되었다.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도 믿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러한 봉사를 수행했다. 로마의 식민 도시인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어 레이투르기아를 보고 공공의 유익을 위해 시민이 의무적으로 수행하는 봉사를 떠올렸을 수 있다. (고후 9:12 연구 노트 참조) 그러한 의무를 이행하는 데는 비용이 들었으므로,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은 충실한 봉사에는 개인적인 희생이 따른다는 점을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그리스어 단어와 그와 어근이 같은 단어들은 성전 봉사나 그리스도인의 봉사의 직무를 가리키는 데 자주 사용된다. 그러한 용법을 보려면 눅 1:23; 행 13:2; 롬 13:6; 15:16 연구 노트를 참조할 수 있다.

내가: 또는 “내 생명이”.—이 구절에 나오는 내가 음료 제물처럼 부어지고 있다 해도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내가 음료 제물처럼 부어지고 있다 해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부분의 제물을 바칠 때 포도주를 제단에 부어 음료 제물로 함께 바쳤다. (레 23:18, 37; 민 15:2, 5, 10; 28:7) 이 구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음료 제물에 비한다. 그는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희생을 바치고 하느님께 “거룩한 봉사”를 드리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자신을 기꺼이 쏟아 부으려는 마음을 표현했다. (고후 12:15 비교) 그는 죽기 얼마 전에 디모데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나는 이미 음료 제물처럼 부어지고 있으며, 놓일 때가 임박했습니다.”—딤후 4:6.

나는 디모데를 여러분에게 …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는 디모데가 로마에서 빌립보까지 육로로 갈 예정이었는지 배편으로 갈 예정이었는지 알려 주지 않는다. 당시 사람들은 그러한 여행을 할 때 로마의 광대한 도로망에 속해 있는 간선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거나 배편을 이용했다. 어떤 방법으로 가든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디모데가 살던 당시에는 배편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으며, 배를 타고 간다 해도 날씨에 상관없이 승객들은 갑판 위에서 지내며 잠을 자야 했다. 파도가 거세게 일면 승객들은 멀미에 시달렸으며 배가 파선되기도 했다. 육로를 이용할 경우 빌립보까지 가는 데는 약 40일이 걸렸을 것이다. 아마도 먼저 아피아 가도를 따라가다가 짧은 경로로 아드리아 바다를 건넌 다음 다시 육로로 갔을 것이다. 아마도 에그나티아 가도로 여행하여 빌립보에 도착했을 것이다. (부록 나13 참조) 도보로 여행하다 보면 햇빛이 내리쬐기도 하고 비가 오기도 했으며 더위나 추위를 견뎌야 했을 것이다. 또한 강도를 만나게 될 위험도 있었다. 저술가들에 따르면 당시의 여관은 지저분하고 사람들로 넘쳐 나고 습기가 많고 벼룩이 들끓었으며 질이 낮은 곳으로 악명이 높았다. (행 28:15 연구 노트 비교) 하지만 바울은 디모데가 그러한 어려움을 감수하고 빌립보로 갈 것이며 다시 로마로 돌아오는 여행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해서 바울은 디모데를 통해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상태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될 것이었다.

에바브로디도: 빌립보 회중에 있던 신뢰할 만한 그리스도인으로, 이 편지에서만 언급된다. 빌립보 회중 사람들은 당시 로마에 수감되어 있던 바울에게 선물을 가져가도록 그를 보냈다. 에바브로디도는 로마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바울에게 도움을 더 베풀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병에 걸려 “거의 죽을 뻔했”으며 그로 인해 예상보다 일찍 빌립보로 돌아가게 되었다.—빌 2:27, 28. 빌 2:26, 30 연구 노트 참조.

동료 일꾼: 롬 16:3; 고전 3:9 연구 노트 참조.

사절: 또는 “사도”. 바울은 “사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아포스톨로스)를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이 단어는 “보냄을 받은 사람”이나 “사절”이나 “사자”를 의미할 수 있다. 에바브로디도는 당시 로마에 수감되어 있던 바울에게 선물을 전달하기 위해 빌립보 회중의 대표자로 파견된 사람이었다.

여러분 모두를 간절히 보고 싶어 하며: 일부 고대 사본들에는 “보다”에 해당하는 단어가 빠져 있으며, 그러한 사본들에 근거하여 “여러분 모두를 사모하며”로 번역한 성경 번역판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사본상의 증거를 볼 때 현재 본문의 표현을 사용할 만한 타당한 근거가 있다. 어떤 사본의 표현을 사용하든, 바울이 한 말의 전반적인 취지는 동일하다.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워한다는 것이다.—부록 가3 참조.

우울해하고 있기: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어는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통스러워하신 일에 관한 기록에서 “몹시 괴로워하다”로 번역되었다. (마 26:37; 막 14:33) 한 사전에서는 이 단어를 “염려하다; 근심하다; 괴로워하다”로 정의한다. 에바브로디도가 몹시 괴로워한 이유는 자신이 병들었다는 것을 빌립보 회중 사람들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바울을 돕지 못하고 오히려 그에게 짐이 되었다는 인상을 그들에게 주었을까 봐 염려가 되었을 것이다. 에바브로디도가 회복되고 얼마 후에 바울은 그를 빌립보로 돌려보내면서 빌립보 회중에 보내는 편지를 전달하게 했다. 그 편지에서 (빌 2:25-29) 바울은 에바브로디도가 일찍 돌아가는 이유를 설명함으로 그가 충실하고 소중한 사람임을 빌립보 회중 사람들에게 확신시켜 주었다. 분명 에바브로디도도 그 편지의 내용을 통해 자신이 그러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을 알고 안심이 되었을 것이다.—빌 2:25, 30 연구 노트 참조.

자기 목숨을 위험에 처하게 했으며: 또는 “자기 영혼을 위험에 처하게 했으며”. 에바브로디도가 로마로 가서 그곳에 수감되어 있던 바울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려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1세기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볼 때 그는 여행을 하다가 비위생적인 환경에 노출되었거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숙소에 머물렀을 수 있다. 그가 “병들어 거의 죽을 뻔”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수 있다. (빌 2:26, 27)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바울은 에바브로디도가 “그리스도의 일로 인해 죽을 뻔했”다고 말한다. 따라서 바울에게는 에바브로디도를 칭찬하고 빌립보 회중 사람들에게 “주 안에서 그를 관례대로 환영”하고 “그와 같은 사람들을 계속 소중히 여기라”고 권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빌 2:29. 빌 2:25, 26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영혼” 참조.

그리스도의 일: 달리 번역하면 “주의 일”. 일부 고대 사본에는 “그리스도의”가 아니라 “주의”로 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 본문의 표현이 사본상으로 더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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